목양칼럼

    안심하고 싶은 마음
    2026-08-23 08:25:59
    관리자
    조회수   16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것, 소개팅 전에 궁합을 묻고 면접 전에 운을 점치는 것. 이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마음이 있습니다. “안심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합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미래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리 알고 싶어 합니다. 앞날을 알면 대비할 수 있고, 대비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주와 타로, 신점이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것들은 즉각적인 답을 줍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다”,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불안을 다룹니다.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대신, 미래를 맡길 만한 분을 보여줍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100:5).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신뢰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앞날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앞날을 아시는 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이 약속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국은 선하게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줍니다.

     

    시편 37편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37:23-24).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넘어져도 붙드심을 받는 삶,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삶.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안심입니다.

     

    점술이 주는 안심은 정보에서 옵니다. 알아야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주는 안심은 관계에서 옵니다. 몰라도 안심이 됩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시는 분이 내 손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는 내일을 모릅니다. 하지만 내일을 아시는 분을 알기에, 모른 채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점치는 삶과 믿음으로 사는 삶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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