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잠잠히 기다립시다! (시 62:1-12)
시편 62편은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 다윗의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림’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물러설 곳 없는 인생의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며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고난과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는 고백으로 살고 있는 소망에 찬 신앙의 태도를 살펴보며 침묵속의 복종, 기다림 속의 능력을 훈련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라!”고 하십니다(1, 5절). “바라보라”는 무엇인가에서 눈을 돌이켜 다른 것에 눈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눈을 돌이키고, 세상 사람에게서 눈을 돌이켜 예수님께 눈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만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내 깊은 자아가 내 속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믿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그분을 신뢰하며 영적 순결을 지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다윗은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명합니다. 여기 “시시로”는 “역경(逆境)중에나, 순경(順境) 중에도 변함없이”의 뜻이고, “토한다”는 것은 “쏟다, 붓어 버리다”의 뜻으로 물을 쏟듯이 마음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모두 내어 놓는 것을 가리킵니다. 번영의 시기에도 평온한 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히12:1, 2).
믿음은 조용히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슬픔, 두려움, 분노, 기대를 하나님께 드러내는 정직한 기도, 그것이 토로입니다. 토로는 불신의 불평이 아니라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게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욥처럼, 한나처럼, 예레미야처럼 말입니다. 상담이나 심리학에서도 감정의 인식과 표현, 자기 성찰, 정서적 수용이 회복의 핵심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알아차리고, 조용히 성찰하며, 신뢰하는 대상 앞에서 표현할 때 인간은 회복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영성에서 말하는 잠잠한 기다림과 토로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상담학은 이를 회복탄력성이라 말하고, 영성학은 이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의 안정감이라 말합니다.
“잠잠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1, 5절).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한 무기력이나 체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침묵 속의 신뢰’, ‘감정의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상황은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인해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 잠잠한 기다림이 절실합니다. 빠르게 판단하고, 성급히 말하고, 조급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이 고요한 영혼은 신앙의 깊이를 말해줍니다.
다윗은 그런 고백 끝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6절). 요동치 않는 삶은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황이 아무리 흔들려도, 믿음의 중심축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62편이 전하는 회복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혼란과 소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병,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상처, 마음의 번민들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수많은 정보와 감정에 떠밀려 방향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만 바라보라, 마음을 그분께 쏟아놓으라, 그분만이 반석이요 구원이시라!” 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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