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엡 2:11-22)
에드워드 버거와 마이클 스타버드가 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라는 책은 생산적인 사고의 5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 ① 깊이 이해하라. ② 실수를 통해 통찰력에 불을 지펴라. ③ 질문을 창조하라. ④ 아이디어의 흐름을 보라. ⑤ 변화하라. 그들은 깊이 이해하는 것이 생각의 기초를 쌓는 것이라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기억하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생각”이 필수적인 과제임을 말씀합니다. 성례주일은 기억하고 생각하며 새기는 주일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새길 것인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하라”말씀한 이후 진행된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말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육체로 이방인이요, 할례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밖에 있었기에 소망이 없는 자라면, 이제는 예수로만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져가는 그 때에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합니다(행3:6절). 또“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고 외칩니다(행3:16절). 사도들에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예수님이 앉은뱅이에게도 유일한 소망이었고, 우리에게도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때를 기억함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선포하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를 생각해야 합니다(13). 본문에 등장하는 “이제는”은 우리의 신분,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줍니다. 하나님과 무관했던 우리가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것이 무엇임을 잘 아는데 있습니다. 옛 모습은 그리스도 밖에, 언약 밖에, 하나님 밖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약속을 수여 받고, 이어 가야할 백성으로, 영원한 소망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다 무너졌습니다. 막힌 장벽을 허시고 화평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해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주어진 “이제는”을 생각할 때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삶을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19). 오늘의 말씀은 생각하라! 는 명령과 더불어 “그 때에, 이제는, 이제부터”라는 단어들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은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으로, 성전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시작된 이 일에 중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롬8:39, 11:29절 참고). 문제는 어떤 이유로든지 “내가 다 완성됐다. 내가 해 냈다.”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한 자리에서 “처음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라!”합니다(행20:31). 예수님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 하십니다(계2:5). 사람은 자만에 익숙하고, 공로주장의 습성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갖는 순간 영혼의 유익을 버리고 내 육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가 되고 맙니다. 믿음, 신앙은 영혼의 유익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헛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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