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사랑한다는 것
    2026-01-03 16:38:1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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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린 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일들이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거리 곳곳에 세워진 구세군 냄비와 TV 화면을 채우는 사랑의 열매 온도탑을 통한 기부 행렬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2025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어쩌면 예전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가 된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유독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소음이 컸던 해였습니다. 서로를 가르고 세우는 목소리들이 커질수록, 정작 우리의 따뜻한 손길이 닿아야 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희미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이런 삭막함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자회를 통해 섬겼던 그 흔적이 우산동과 문화동 지역의 여러 어려운 사람들을 묵묵히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섬김과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그들에게 일상이란 단순히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채워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들의 삶은 ''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과연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2025년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합니다. 모든 것이 효율과 보상, 그리고 가성비로 계산되는 세상에서 사랑의 정의는 자꾸만 왜곡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내가 받는 위로내가 소유하는 감정으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구호 단체나 모임이 사랑을 외치면서도 때때로 갈등에 휘말리는 이유는, 그 기저에 자기 유익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20:35).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애는 결국 타인을 상처 입히고 맙니다.

    오늘날의 사랑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입니다. 내가 준 만큼 받아야 하고, 손해 보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SNS를 통해 나의 선행이 빛나길 바라고, 사랑을 통해 나의 명예나 매력이 증명되길 원합니다. 이런 이기적 자기애는 전염성이 강해 우리를 더욱 고립시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단념이나 희생처럼 느껴져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을 탈피하는 데 있습니다. 나를 세상의 중심에서 내려놓고, 그 자리에 타인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 사랑의 가장 완벽한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탄의 신비는, 사랑이 결코 소유가 아니라 비움임을 보여줍니다. 이념과 계층, 세대의 벽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2025년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 보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그 마음을 현장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사랑은 타고나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우리는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주는 것에는 서툽니다. 하지만 근육을 단련하듯 사랑도 연습하면 늘어납니다. 주는 기쁨을 보고 배우며, 작은 것부터 나누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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