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시간을 다스리는 자
    2025-12-05 14:56:4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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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코끝을 아리게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책상 위 달력이 얇아진 만큼,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이 차오른다. 202511, 나는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흐르는 세월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유한함과 아쉬움은 말로다 할 수 없는 듯하다.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위기의 순간에 시간을 다스리는 자!를 외치며 과거로 돌아가는 초능력 캐릭터가 등장해 웃음을 주곤 했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과거의 기록과 미래의 계획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시간을 통제하는 듯한 대리 만족을 느꼈었다. 하지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 우리는 더 정교한 디지털 도구로 11초를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시간의 빈곤에 시달린다. 숏폼 콘텐츠가 순식간에 몇 시간을 삭제해 버리는 도파민의 시대, 물리적인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증발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했다. 시계바늘처럼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우리가 나이를 먹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크로노스의 영역이다. 2025년의 가을과 겨울이 가고 2026년의 겨울과 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 멈춰 서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몰입하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카이로스가 된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조언한다. 이 말의 원어적 의미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기회를 사라(Redeem the time)”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라는 차원을 넘어, 덧없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낚아채어 나만의 의미 있는 카이로스로 바꾸라는 적극적인 주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속 주문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연말이 다가온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경제 상황은 불투명하며, 세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하지만 내 힘이 더 없어지기 전에, 기억력이 더 감퇴하기 전에깨닫고 살아야 한다는 믿음의 다짐이 더 절실한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하루를, 지금 마주한 사람을,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고 감사할 때, 크로노스는 비로소 카이로스로 변모한다. 우리 인생의 풍성함은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낸 의미의 두께로 결정된다.

    차가운 바람이 다시금 정신을 맑게 깨우는 이 계절,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멍하니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고 기회를 붙잡는 시간을 다스리는 자로 살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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