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늦가을, 떨어지는 것들의 언어
    2025-11-22 18:42:2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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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쌀쌀해진 날씨는 몸과 영혼을 움추러 들게 합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단풍지는 산을 걸어볼 기회는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무실 창가에서, 심방 가는 길에서, 목양실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에서 가을은 어김없이 깊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홀로 맞이하는 이 계절이 목회자로서 더 깊은 묵상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 같습니다.

    단풍이 드는 것은 사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잎을 버립니다. 그 버림의 과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떨어지기 직전이 가장 찬란하다는 역설, 이것이 늦가을이 주는 영적 교훈인 것 같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들을 만납니다. 내가 원했던 계획들, 기대했던 열매들, 품었던 기대들, 그것들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하지만 늦가을 나무가 가르쳐줍니다. 때로 버림이 생존의 지혜이며, 그 버림의 순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올해도 어김없이 낙엽이 집니다. 성도들의 삶에서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이별들이 있었습니다. 떠나보내야 했던 것들, 포기해야 했던 것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치 나무가 잎을 떨구면서도 내년 봄을 준비하는 눈()을 품고 있듯이.....

    욥은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라고 고백합니다(31:1). 이 늦가을, 나는 목회자로서 다시 한번 내 눈과, 내 마음과, 내 생각과 언약을 세웁니다. 떨어지는 것들만 보지 않기로, 떠나는 것들에만 집중하지 않기로, 그 이별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로, 낙엽이 진 자리에 이미 준비된 새 생명의 싹을 바라보기로......

    가을은 끝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비움이지만 동시에 채움입니다. 지금 우리가 내려놓는 것들이 더 본질적인 것을 붙들기 위한 하나님의 초대일 수 있습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떨어뜨리는 나무의 지혜처럼, 우리도 영적 겨울을 준비하며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늦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하나하나가 다음 계절을 위한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상실들, 내려놓음들도 결국 더 풍성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임을 믿습니다.

    이 가을, 떨어지는 것들의 언어에 귀 기울입시다. 그 안에서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과 언약을 새롭게 합시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본질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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